매년 국가 검진에서 "이상 없음" 통보를 받고 안심하고 계신가요? 저는 후배가 20대에 유방암 진단을 받던 날, 그 통보가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아무런 가족력도 없었고, 겉으로는 마른 편이었는데도 혹이 만져졌고, 결국 암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저를 이 주제에 깊이 파고들게 만들었습니다.
엑스레이만 믿었다가는 놓친다, 치밀 유방 문제
한국 여성의 약 70%는 치밀 유방(dense breast)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치밀 유방이란 유방 내 지방 조직보다 유선 조직의 비율이 높은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맘모그래피(유방 엑스레이 촬영)에서 지방은 검게, 종양은 하얗게 나타나는데, 치밀 유방은 배경 자체가 하얗기 때문에 암 덩어리가 배경 속에 묻혀버린다는 점입니다. 전문 용어로 화이트아웃(white-out)이라고 부르는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숙련된 전문의라도 식별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보니, 맘모그래피가 치밀 유방에서 보이는 민감도는 최저 40~50%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유방 초음파를 병행하면 맘모그래피가 놓친 암의 약 40%를 추가로 발견할 수 있다는 데이터도 확인되었습니다. 초음파는 방사선 노출이 없고, 낭종(물혹)과 고형 종양을 구별하는 데도 탁월합니다.
물론 초음파가 만능은 아닙니다. 미세석회화(microcalcifications), 즉 아주 작은 칼슘 침착물 형태로 나타나는 초기 유방 상피내암(DCIS)은 초음파로 잡기 어렵고, 맘모그래피가 오히려 강점을 보입니다. 이 때문에 두 검사를 병행하는 것이 치밀 유방을 가진 분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여성의 유방암 발생 연령 분포도 서구와 전혀 다릅니다. 서양에서는 60~70대 환자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출처: 국립암센터). 가장 바쁘고 건강하다고 느끼는 시기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른 것과 건강한 것은 다르다, 에스트로겐 과잉의 함정, 술, 수면 부족은 유방암 확률을 높인다.
후배를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게 바로 체형이었습니다. 날씬하고 특별히 살이 찐 것도 아니었는데, 암이라는 게 쉽게 납득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직접 공부해 보니 이게 오히려 더 위험한 패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방암 유형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으로, 전체 환자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이 암은 에스트로겐을 영양분 삼아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겉으로는 말라 보여도 뱃속에 내장 지방이 쌓인 마른 비만 상태라면 에스트로겐 과잉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뱃살은 빼는 게 좋답니다.
폐경 이후 난소 기능이 멈추면 지방 세포가 에스트로겐의 주요 공급원이 됩니다. 지방 세포 안에는 아로마타제(aromatase)라는 효소가 있는데, 여기서 아로마타제란 남성 호르몬 계열인 안드로겐을 에스트로겐으로 전환시키는 효소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에스트로겐은 유방 조직 내에서 수십 배 농축되어 암세포 성장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게 됩니다.
알코올도 여기서 빠질 수 없습니다. 하루 맥주 한 캔 수준인 알코올 10g만으로도 간에서의 에스트로겐 분해를 방해하고 혈중 호르몬 농도를 높입니다. 특히 한국인은 알코올 분해 효소 활성이 낮은 유전적 특성을 가진 비율이 높아,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체내에 더 오래 축적되고 DNA를 손상시킵니다. 와인이 심혈관에 좋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믿는 분들이 계신다면, 유방암에 한해서만큼은 그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수면 부족과 야간 근무도 위험 요인입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교대 근무를 발암 추정 요인으로 공식 지정하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암연구소). 수면이 부족해지면 염증 유발 물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 분비가 증가하는데, 여기서 사이토카인이란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로, 만성적으로 과다 분비될 경우 암세포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발병했다면 반드시, BRCA 유전자 검사
후배가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의료진이 가장 먼저 권유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유전자 검사였습니다. 그리고 난자를 미리 채취해서 보관해두는 절차도 진행했는데, 항암제가 난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BRCA 유전자 이야기를 처음 제대로 듣게 됐습니다.
BRCA1/BRCA2는 정상적으로 DNA 손상을 복구하는 종양억제유전자입니다. 여기서 종양억제유전자란 세포 분열을 조절하고 암 발생을 막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말합니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상동 재조합(homologous recombination, HR) 경로가 손상되어 DNA 이중가닥 절단을 제대로 수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BRCA 변이가 있는 세포는 DNA 수리를 위해 PARP라는 효소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이 점을 역이용한 것이 PARP 억제제(PARP inhibitor)인데, 쉽게 말해 BRCA 변이 세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수리 경로를 차단해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표적 치료 전략입니다. 올라파립(olaparib) 같은 약물이 대표적입니다.
35세 이전에 유방암이 발병했거나, 양측성(양쪽 유방 모두)으로 나타났다면, 가족력이 없더라도 반드시 유전자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검사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할 이유가 없는 부분입니다. 어떤 치료 옵션을 쓸 수 있는지가 결과를 완전히 바꿀 수 있으니까요.
예후가 나빴던 암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밀 의료의 현재
과거에는 특히 예후가 나쁘기로 손꼽혔던 HER2 양성 유방암도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T-DXd)과 같은 항체약물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가 개발되었는데, ADC란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항암 약물을 결합시킨 형태로, 정상 세포는 최대한 피하면서 암세포에 직접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치료제 대비 질병 진행 위험을 70% 이상 낮춘다는 결과가 나와 있으며, 2024년 4월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연간 환자 부담액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삼중 음성 유방암(triple-negative breast cancer)은 공격할 수용체 표적 자체가 없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유형입니다. 그런데 면역 관문 억제제인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을 수술 전 항암 요법에 병용했을 때 암세포가 완전히 소멸하는 비율이 65%에 달한다는 임상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삼중 음성 유방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이 발전은 중요합니다.
지금 본인이나 주변에서 진단을 받으셨다면, 아래 항목들을 의료진에게 반드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 내 암의 호르몬 수용체(ER/PR) 양성 여부 및 HER2 상태
- BRCA 유전자 변이 검사 가능 여부
- 현재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표적 치료제 옵션
- 수술 후 항호르몬 요법 기간(5년 vs 10년 연장 여부)
- 액체 생검(liquid biopsy)을 통한 미세 잔존암 모니터링 가능 여부
액체 생검이란 피 한 방울로 혈액 속에 떠다니는 미세한 암세포 DNA 조각을 검출하는 기술로, 기존 CT나 MRI보다 평균 8~10개월 먼저 재발 징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일반 임상에서 보편화된 단계는 아니지만, 치료 전략을 세울 때 알고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옵션입니다.
유방암은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의 데이터를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질환입니다. 후배가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제가 느낀 건, 무서워서 외면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치밀 유방이라면 초음파를 병행하고, 젊은 나이에 발병했다면 유전자 검사를 요청하고, 술과 뱃살 문제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보시길 바랍니다. 아는 만큼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의학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검사와 치료 방향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